2025년의 획기적인 과학 성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6779호는 올해 과학계를 뒤흔든 사건들을 한데 묶어 조명했다. 산업·기후·보건·우주·AI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변화는 한 가지 공통점을 드러낸다. 기술의 진보가 가속할수록, 그 파급력은 정치·경제·안보의 역학과 맞물려 더 크게 요동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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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6779호는 올해 과학계를 뒤흔든 사건들을 한데 묶어 조명했다. 산업·기후·보건·우주·AI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변화는 한 가지 공통점을 드러낸다. 기술의 진보가 가속할수록, 그 파급력은 정치·경제·안보의 역학과 맞물려 더 크게 요동친다는 점이다.

화석연료 시대의 균열…재생에너지, 전력 생산 ‘1위’로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수억 년 전 식물이 포착해 화석연료로 저장한 ‘매장된 태양 에너지’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올해는 “지금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로의 전환이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생에너지가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석탄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상반기(1~6월) 전 세계 전력 사용량 증가분을 태양광·풍력이 모두 충당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빨랐다.

중국은 이 전환의 한복판에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9월 유엔 연설에서 향후 10년 안에 탄소배출을 최대 10% 감축하겠다고 밝히며,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풍력·태양광 투자 확대를 통해 달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선 옥상 태양광이 전등·휴대전화·선풍기 같은 생활 전력을 값싸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패널 수입이 급증했다. 사이언스는 이런 재생에너지 급증세를 ‘2025년 올해의 혁신’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 낙관은 11월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서 확인된 ‘암울한 현실’과 함께 존재한다. 각국이 파리협정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배출량은 계속 증가했고, 지구 온난화를 1.5℃로 제한한다는 목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이 커졌다. 그럼에도 옥스퍼드대 데이터 과학자이자 기후 블로거 한나 리치는 “재생에너지 확산이 화석연료 감소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은 석탄 사용을 줄이기 직전 단계에 있으며, 다른 국가들도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녹색 거인’ 중국…가격 하락이 수요 폭발로 이어졌다

재생에너지 전환의 엔진은 중국의 제조 역량이다. 중국은 태양전지 80%, 풍력터빈 70%, 리튬배터리 70%를 생산하며 압도적 가격 경쟁력을 구축했다.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ASPI) 산하 중국 기후 허브 리슈오 소장은 “경제 규모, 제조 능력, 치열한 국내 경쟁이 결합돼 진정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생산량 급증은 가격 하락을 낳고, 가격 하락은 수요 폭발로 이어졌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 기술은 중국 경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으로 커졌고, 풍력·태양광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전력원이 됐다. 중국의 태양광 발전량은 10년 사이 20배 이상 증가했으며, 현재 중국의 태양광·풍력 설비는 “미국 전체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만큼”의 용량으로 확대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막과 티베트 고원을 뒤덮은 패널, 해안과 산악 능선에 늘어선 대형 터빈은 중국의 에너지 지형과 풍경 자체를 바꾸고 있다.

수출도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유럽은 기존 고객이지만, 개발도상국들이 에너지 자립과 가격 요인을 앞세워 중국산 패널·배터리·터빈을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스 가격과 전기요금이 오르자 2022~2024년 중국산 패널 수입이 5배로 늘었다. 남아공은 노후 석탄발전의 불안정성이, 에티오피아는 가뭄으로 수력 의존이 흔들리는 현실이 재생에너지 도입을 재촉했다.

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풍력·태양광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배터리 저장과 장거리 송전망 같은 인프라가 필요하다. 중국은 초고압 송전선과 저장 설비를 늘리고 있지만 속도가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항공·중공업의 전력화도 단기간에는 쉽지 않다. 미국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풍력·태양광 개발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값싼 중국산 패널은 무역장벽에 막혀 확산이 더디다는 지적도 있다.

맞춤형 유전자 편집, “희귀질환 치료의 문” 열었다

올해 생명을 위협하는 대사질환을 앓는 남자아이가 세계 최초로 ‘맞춤형 유전자 편집’ 치료를 받았다. CPS1 유전자 결함으로 암모니아 해독이 어려운 환자는 엄격한 단백질 제한과 간이식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연구진은 결함 유전자의 ‘단 하나의 철자 오류’를 바로잡는 염기편집기(크리스퍼 변형)를 설계했고, 2월 지질 나노입자 주입 방식의 치료 승인을 받아 투여를 시작했다. 추가 치료 뒤 아이는 단백질 섭취를 늘리고 체중이 증가했으며, 약물 의존도도 낮아졌다.

연구진은 이 플랫폼을 변형해 유사 대사장애 환자 5명을 추가 치료할 계획이다. FDA가 맞춤형 치료의 특성을 고려해 임상 검증 절차를 단순화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다양한 돌연변이로 ‘치료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희귀질환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비용과 안전성 불확실성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는다.

항생제 내성 임질에 ‘새 무기’…수십 년 만의 신약 등장

매년 8천만 명 이상이 감염되는 임질은 통증·분비물·출혈뿐 아니라 골반염·불임 등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원인균 임균은 거의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며 ‘마지막 카드’였던 세팔로스포린 계열마저 효과가 흔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두 가지 신약이 효과를 입증했고, 둘 다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GSK의 게포티다신은 DNA 복제에 필요한 효소(DNA 자이라제·토포이소머라제 IV)를 표적으로 하는 새 계열 항생제다. 졸리플로다신은 글로벌 항생제 연구개발 파트너십과 협력해 개발됐으며 작용기전이 다른 계열로 분류된다. 두 약 모두 주사제가 아닌 경구 복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과학자들은 내성 진화가 빠른 임균 특성상 “다음 세대 항생제 개발이 끊기면 다시 막다른 길로 간다”고 경고한다.

암 전이의 ‘숨은 조력자’…신경세포가 미토콘드리아를 건넸다

종양이 주변 세포를 속여 성장과 확산을 돕게 만든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올해 연구는 그 메커니즘을 한층 구체화했다. 신경세포가 암세포에 미토콘드리아(세포 에너지 공장)를 전달해 암의 전이 능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암세포가 신경세포의 미토콘드리아를 획득하면 대사가 촉진되고, 전이 부위에서 그 비율이 크게 상승하는 현상도 관찰됐다. 연구진은 미토콘드리아 전달을 차단하면 전이를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향후 ‘뉴런의 관대함’을 차단하는 치료 전략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늘 전체를 3일마다 스캔…베라 C. 루빈 천문대 완공

칠레 산꼭대기에 완공된 베라 C. 루빈 천문대는 ‘확대 관측’ 대신 하늘 전체를 반복 촬영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천문학을 가속할 전망이다. 내년 초부터 10년 동안 3일마다 전 하늘을 전례 없는 정밀도로 기록하며, 매일 밤 수백만 건의 ‘경보(변화 신호)’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거대한 시야와 초고해상도 카메라, 광섬유 전송, 1분 내 경보 발령 시스템이 결합돼, 천문학자들은 지능형 알고리즘으로 중요한 현상을 선별해야 한다. 이 데이터는 태양계 천체 수를 크게 늘리고 ‘행성 9’ 탐색, 우주 폭발 관측, 은하 진화, 암흑물질·암흑에너지 연구까지 폭넓게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드래곤맨은 데니소바인”…치태에서 DNA를 뽑아냈다

15년 넘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던 데니소바인이 올해 마침내 실체에 가까워졌다. ‘드래곤맨’으로 불린 14만6천 년 전 하얼빈 두개골이 데니소바인이라는 사실이 DNA로 확인된 것이다. 결정적 단서는 치아에 남은 0.3mg의 굳어진 치태(명판)였다. 광물 매트릭스에 갇힌 DNA가 오래 보존되면서, 기존 데니소바 DNA와의 일치가 확인됐다. 두꺼운 눈썹뼈와 강한 턱 등 형태학적 특징까지 더해지며, 박물관 소장 화석 중 데니소바인을 외형으로 식별할 길도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LLM이 과학을 한다”…발견의 속도전, 그러나 논란도

알파폴드2가 AI의 과학 잠재력을 보여준 뒤, 올해는 범용 대규모 언어모델(LLM)이 수학·화학·생물학 등에서 박사급 역량을 보였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일부 모델은 고난도 수학 경시대회 수준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보였고, 화학에서는 적은 횟수의 실험으로 새로운 반응 조건을 최적화하는 사례도 제시됐다. 생물학에선 ‘에이전트형 AI’가 기존 약물에서 새로운 후보를 찾아내고, 수년에 걸친 연구 통찰을 단기간에 재현했다는 보고도 나왔다.

다만 모든 시도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과학적 엄밀성, 가설 설계의 타당성, 동료평가 수준을 AI가 안정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도 공존한다. 그럼에도 빅테크와 투자자들은 과학 특화 스핀오프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며 “AI가 AI를 개선하는 시대”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뮤온 g-2 ‘새 물리학’ 신호는 약해졌지만…계산은 승리했다

입자물리학자들이 기대했던 ‘표준모형 밖’의 강력한 신호는 올해 약해졌다. 장기간 진행된 뮤온 g-2 실험에서 뮤온의 자기장이 표준모형 예측보다 더 강하다는 기존 주장과 달리, 최종 측정값이 예측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정리됐기 때문이다. 대신 격자 게이지 이론과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쿼크·글루온 기여도를 처음부터 정밀 계산하는 데 성공하면서, “데이터 기반 추정에 필적하는 이론 계산”이 가능해졌다는 점이 큰 성과로 평가된다.

유전자 조작 돼지 신장, 9개월 버텼다…이종이식 ‘현실’로

‘선정적 헤드라인’으로 소비되던 이종 장기이식이 올해는 기록을 세웠다. 69개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 신장이 미국 환자 몸에서 약 9개월간 기능을 유지했고, 6개 유전자 변형 신장도 중국에서 유사한 기간 작동했다. FDA가 본격 임상시험을 허가하면서 상용화의 문턱도 낮아졌다. 연구자들은 더 긴 생존을 위해 추가 유전자 변형과 더 안전한 면역억제 전략, 면역관용 유도(돼지 흉선 동시 이식 등)가 필요하다고 본다.

폭염 속 쌀을 지키는 유전자…중국, QT12 발견

기후변화로 야간 고온이 잦아지면 벼의 호흡이 급증해 수확량과 품질이 떨어진다. 중국 연구진은 533종 벼를 장기간 재배·교배해 12번 염색체의 핵심 유전자 QT12를 찾아냈다. 특정 대립유전자가 활성화되면 전분 배열이 불규칙해져 쌀이 푸석해지고 쉽게 부서지는 반면, QT12 활성화를 억제하는 대립유전자는 고온에서도 품질을 유지했다. 연구진은 상업 품종에 이를 도입해 고온 조건에서 최대 78% 수확 증가와 품질 개선을 확인했고, 자포니카 계열에도 육종으로 적용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과학계 ‘격변’…연구 생태계 흔들

사이언스는 올해 미국 과학계의 최대 변수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충격을 꼽았다. 정부 효율성부(DOGE) 주도로 NIH·NSF의 다수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재편됐고, 특히 다양성·기후·성정체성 관련 연구가 표적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방 공무원 구조조정으로 과학기관 인력이 대거 이탈하면서 경험 손실도 발생했다. 보건복지부 수장으로 임명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를 둘러싼 논란, 자문위원회 해체, 연구비 심사 기준 변경 등은 연구의 ‘정치화’ 우려를 키웠다.

대학가도 흔들렸다. 일부 상위권 대학에 대한 연방 보조금 동결과 감독 강화 협상, 강경한 이민 정책이 유학생 유입 감소로 이어지며 박사 과정 규모를 줄이는 대학들이 늘었다. 다만 연구 옹호 단체들의 소송으로 간접비 삭감 시도가 일부 제동 걸렸고, 의회가 2026년 과학 예산 대폭 삭감 요구에 저항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무엇보다 상당수 조치가 법률이 아닌 행정 명령 형태여서, 차기 행정부가 되돌릴 여지도 남아 있다.

“기술이 만든 전환점, 이제 시작”

사이언스가 그린 올해의 과학 풍경은 낙관과 불안이 겹친다. 재생에너지는 비용 절감과 에너지 안보라는 ‘자국의 이익’이 동력이 되며 되돌리기 어려운 흐름을 만들었고, 맞춤형 유전자 편집과 신약, 초대형 관측 장비, AI의 연구 참여는 과학의 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동시에 기술 패권과 무역장벽, 정치의 개입, 인프라 병목은 다음 단계의 성패를 가를 변수로 떠올랐다. 올해의 전환점은 결론이 아니라, 더 큰 경쟁의 출발선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보건 지원 급감… 빈곤국 보건 위기 경고음 커진다

수십 년간 세계 보건을 위한 국제적 지원은 주요 국가들에서 정치적 성향을 초월해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부유한 국가들이 질병과 영양실조 퇴치를 위해 활동해 온 국제 보건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수십억 달러 규모로 삭감하면서, 글로벌 보건 체계 전반에 위기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변곡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올해 1월이었다. 미국 정부는 100억 달러가 넘는 국제 보건 지원금을 포함해 모든 해외 원조를 전면 동결했고,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해체했다. 이로 인해 식량과 의약품 공급이 중단되고, 미국 내외에서 수천 명의 관련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 연말 들어 일부 자금이 복원되기는 했지만, 현장에 남긴 충격은 컸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 역시 국방비 증액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원조 예산을 대폭 줄였다.

보건계량평가연구소(IHME)가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보건 분야 기부금은 391억 달러로 전년 대비 21%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지원하는 세계기금, 유엔 에이즈 합동 프로그램, 백신 연합 등 주요 국제기구들이 긴축 운영에 들어갔다. 특히 미국이 회원국 자격을 박탈한 세계보건기구는 가장 큰 타격을 받아 조직 축소와 사업 축소라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예산 삭감의 여파는 이미 현장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7월 세계기금은 기존에 약속했던 3대 질병 대응 지원금을 대폭 줄이면서, 각국 정부가 의약품과 진단 도구, 살충제, 모기장 등 필수 보건 물품에 대한 지출을 축소하도록 만들었다. 유엔에이즈는 여러 국가에서 HIV 예방과 검사 프로그램이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고 보고했다.

최근의 재정 지원 축소가 가져올 영향을 분석한 연구들은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질병 발생과 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을 경고한다. 일부 국가는 자체 재정을 투입해 충격을 완화하거나, 새로운 기부국이 공백을 메울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많은 빈곤국들이 사망 원인을 체계적으로 기록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번 정치적·재정적 변화가 초래할 정확한 인명 피해 규모는 끝내 파악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공지능과 사기, 학술 문헌을 좀먹다

인공지능(AI)과 조직적인 연구 부정행위가 학술 문헌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발표된 여러 연구에 따르면 논문 공장, AI 활용 남용, 연구 윤리 위반이 학계 전반에 확산되면서 학술지들이 사소하고 조잡하며 심지어 터무니없는 논문들로 빠르게 오염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최근 이뤄진 이례적으로 정밀한 분석 결과는 상황의 심각성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가짜 논문의 절대적인 수는 아직 전체 논문 가운데 소수에 불과하지만, 증가 속도는 과학 문헌 전체의 성장률을 훨씬 웃돌고 있다. 배경에는 저자, 편집자, 출판사가 서로 얽힌 복잡한 생태계가 있다. 일부 저자들은 이력서를 부풀리기 위해 가짜 논문을 양산하고, 일부 편집자와 출판사는 논문 처리 수수료(APC)를 통해 이익을 얻거나 심지어 뇌물을 받는 등 사적 이익을 좇고 있다는 지적이다.

AI의 급속한 발전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가속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논문 작성 과정에서 AI를 얼마나 자주 활용하는지를 조사한 대규모 다학제 연구에 따르면, 2022년 이후 AI 사용 빈도는 꾸준히 증가했다. 일부 활용은 저널에 사전 고지하고 관련 정책을 준수하는 한에서 합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사용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암연구협회(AACR)는 최근 자사가 발행하는 10개 학술지를 분석한 결과, AI를 사용하면서 이를 명시하지 않은 저자가 AI 사용을 인정한 저자보다 4배 많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단순한 정보 비공개를 넘어 노골적인 부정행위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연구는 일부 비양심적인 행위자들이 공개된 건강 데이터 세트와 AI 생성 도구를 결합해 거의 모든 질병·원인·인구 집단 조합 간의 상관관계를 탐색하는, 학문적 가치가 거의 없는 논문들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연구팀은 저자들이 AI를 이용해 내용이 빈약한 편집자 서한이나 짧은 논평을 조작해 출판 실적만을 부풀리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응해 일부 출판사들은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테일러앤프랜시스는 조작된 결과가 포함됐거나 논문 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의심되는 약 1,000편의 논문을 조사하기 위해 학술지 ‘바이오엔지니어드(Bioengineered)’의 투고를 일시 중단했다. 이어 9월에는 PLOS와 프런티어스가 악용된 공중보건 데이터 세트를 기반으로 한 논문의 상당수를 자동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출판사들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AI를 활용한 부정행위와의 ‘치열한 경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학술 출판의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술적 대응을 넘어 연구 평가 시스템과 인센티브 구조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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