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의 그물망...바뀌지 않는 의식
"이제 우린 그저 기다릴 뿐이야.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모르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너무 늦었어—그녀의 손을 잡아줬어야 했던 시간들,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던 시간들, 그녀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보여줬어야 했던 시간들을 되돌릴 순 없어.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여기 앉아서 시간이 흘러가는 걸 지켜보는 것뿐이야." -호스피스병동에서 아내를 간병하는 김씨(78) 인터뷰 중
"아내가 고통스러운 과거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끔은, 만약 아내가 그 기억들을 잊는다면 더 행복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신이 아내에게 이런 병을 주신 이유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생각해 보니, 아내가 이렇게 된 건 잘못된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다리를 다치지 않았더라면, 제대로 된 직업이 있었더라면, 아내가 지금보다 더 잘 살았을까요? 차라리 아내가 과거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호스피스병동에서 치매 아내를 간병하는 이씨(81) 인터뷰 중
이 논문을 보며 지난 겨울 각각 병실에 계시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한국은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지금, 사회의 가장 내밀한 곳인 호스피스 완화의료(HPC) 병동에서는 이전 세대에는 볼 수 없었던 기묘하고도 서글픈 풍경이 펼쳐진다. 평생 '바깥양반'으로 불리며 가사(家事)와 담을 쌓고 지내던 노년의 남편들이 임종을 앞둔 아내의 머리맡을 지키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윤석주 교수는 Journal of Cross-Cultural Gerontology에 이 낯선 풍경 이면의 복잡한 심리적 기제와 가족 내 관계의 동역학을 정교하게 파헤친 논문을 발표했다. 윤 교수는 2024년 6개월간 서울의 한 대학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머물며, 아내를 간병하는 두 노년 남성 김 씨(78)와 이 씨(81)의 가족 사례를 현미경 보듯 세밀하게 관찰했다.이 연구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은 노년 남성들이 간병에 뛰어드는 '동기'에 있다. 이들에게 간병은 단순한 부부애의 발로가 아니다. 그것은 평생 가족을 부양한다는 핑계로 아내에게 모든 희생을 전가하던 과거에 대한 '사후적 속죄'에 가깝다.
산업화 시대의 역군으로 살았던 김 씨는 아내가 자신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연고 없는 서울로 올라와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이 씨 역시 부상과 병마로 평생 아내에게 짐이 되었던 세월을 복기했다. 그들에게 아내의 암은 '나 때문에 생긴 병'이었고, 병실을 지키는 행위는 늦어버린 미안함의 표현이었다.하지만 수십 년간 몸에 밴 가부장적 권위는 병실에서도 나타났다. 노인 남성 간병인들은 기저귀를 갈거나 몸을 씻기는 직접적인 육체노동보다는, 자녀와 며느리, 병원 간병인,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관리자(Manager)'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논문은 이를 '돌봄의 그물망(Web of Care)'이라 명명했다.
남편들은 마치 회사의 프로젝트를 운영하듯 가족들의 간병 순번을 정하고, 의료진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자원봉사자들에게 특정 서비스를 요구했다. 이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돌봄이라는 '여성적 영역'에 진입하려는 노년 남성 특유의 전략으로 풀이된다.그러나 이 '그물망' 안에서는 사소하지만 날카로운 균열이 발생했다. 남편들이 생각하는 '좋은 돌봄'과 의료진의 '의학적 판단'이 충돌한 것이다.
김 씨는 아내가 좋아했다는 이유로 감염 위험이 있는 목욕 서비스를 고집했고, 이 씨는 뼈 전이가 시작된 아내에게 무리한 마사지를 하도록 요청했다.이는 과학적 합리성과 정서적 애착 사이의 충돌로 보인다. 남편들에게 목욕과 마사지는 아내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으나, 의료진에게 그것은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위험 요소'였다. 병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조용한 전쟁은 돌봄이 단순히 기술적인 행위가 아니라, 각자의 삶의 궤적이 부딪히는 '의미의 그물망'임을 시사한다.
윤 교수의 연구가 던지는 가장 묵직한 질문은 '누가 진정한 돌봄의 수혜자인가' 하는 점이다. 아내를 돌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두 남편 역시 80세를 전후한 고령으로, 본인 스스로가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잠재적 환자'였다.자녀들은 아버지가 아내의 휠체어를 밀다가 넘어질까 봐 노심초사했고, 간병인들은 소변기를 비우려다 쏟아버리는 아버지를 보며 그 역시 돌봄이 필요한 존재임을 직감했다.
역설적이게도, 아내를 돌보기 위해 병원을 찾은 행위가 사회적 고립을 막고 자녀들과 소통하게 함으로써 남편들 스스로를 치유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간병인이 동시에 피간병인이 되는 이 기묘한 공생 관계는 고령화 사회가 마주한 서글픈 자화상이다.이번 연구는 한국 사회에 엄중한 경고를 보낸다. 노인 돌봄을 더 이상 개별 가족의, 혹은 특정 성별의 희생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식의 헌신으로 지탱되던 '효(孝)'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고,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평등하고 상호적인 '공적 돌봄의 그물망'이 필요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IMF를 겪으며 노동계급은 모두 일터로 끌려 나갔고 우리 사회는 맞벌이 시대로 접어들었다. 사회는, 공동체는 노년의 남편들이, 또 노년의 아내들이 짊어진 무게를 나누어 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